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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와 고난을 통해 뭔가를 배울 수 있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성도에겐 고난을 절망의 근거로 삼지 않고 소망의 이유로 삼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한자어로 절망(切望)’은 소망이 끊어졌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소망을 잃어버린 것이 절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소망을 잃지 않았다면 절망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레미야는 절망을 말하다가 갑자기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이라고 표현합니다. 왜 갑작스럽게 예레미야의 고백이 달라졌을까요?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자신의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해달라고 간구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내 고초와 재난은 개인사로 인한 고난이 아닙니다. 예루살렘 성이 파괴되고 백성들이 사로잡혀 가는 비참한 현실 앞에 선지자로서 토해내는 고통의 탄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조차도 오히려 소망이 된다고 말합니다.

 

절망이 소망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을 신뢰해야 합니다(22-23). 자신의 능력이나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에 소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다함이 없는 사랑, 마르지 않는 자애로운 사랑을 생각하니 소망이 생긴다는 말입니다.

 

절망이 소망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심령을 향해 말씀으로 격려해야 합니다(24). 우리는 내 심령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계속 권면하고 설교해야 합니다. 낙심하는 자신을 향해 하나님의 약속을 선포하며 소망을 갖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이라는 말씀 속에 예레미야 역시 자신을 향해 말씀으로 격려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낙심하며 불안해하는 자신의 심령을 향해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권면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절망이 소망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25-26). 여호와의 구원을 잠잠히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기에 하나님의 구원을 잠잠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개입과 간섭하심을 바라며 간구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훈련이 바로 기다림입니다. ‘내 때를 고집하기보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 기다림 속에 하나님은 아침마다 새롭게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소망을 주십니다. 예수님을 통한 구원 역시 우리의 때가 아닌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신 일입니다. 그래서 죄와 사망 가운데 절망하는 인생에 구원의 소망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최근 우리는 코로나라는 감염병의 위협에서 많은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당황스럽고 낙심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절망은 오히려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심을 바라봐야 합니다. 낙심될 때마다 심령을 향해 말씀으로 격려해야 합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기에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려야 합니다. 소망마저 끊어지는 듯한 상황일지라도 믿음의 성도는 오히려 하나님을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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