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에서 다시 뿌린 ‘복음의 씨앗’
황석하 집사(폰티아낙)
필리핀 세부의 호텔에서 출발한 지 10분 만에 버스는 좁은 도로로 접어들었습니다. 사람과 오토바이 사이를 지나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던 버스가 멈춘 곳은 만다우에 장로교회였습니다. 지난달 29일, 세부 단기봉사선교팀의 두 번째 사역지였습니다.
전날 페이스웨이 교회에서 성경학교와 이미용, 의료 사역을 통해 받은 은혜와 감동을 간직한 채 둘째 날 일정도 시작됐습니다. 성경학교팀은 교회 2층 예배당의 장의자를 다시 배치했고, 1층에는 의료선교팀의 진료 공간과 이·미용실이 차려졌습니다.
마을 아이들은 우리가 온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요. 성경학교팀의 찬양 인도가 시작되기 무섭게 예배당은 아이들로 가득 찼습니다. 한국처럼 서늘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곳도 아니었습니다. 푹푹 찌는 날씨에 선풍기 몇 대가 전부인 예배당에서 아이들은 연신 손뼉을 치며 찬양을 따라 불렀습니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저는 그곳에 함께하시는 주님의 임재를 느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 장면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무엇 때문일까를 한참 생각하다가, 그 풍경이 저의 유년 시절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1980~1990년대, 제가 초등학교 때 다니던 교회 건물의 모습도 만다우에 장로교회와 흡사했습니다. 교회 마당에 들어서면 오른쪽과 왼쪽에 놓인 계단이 2층 예배당으로 이어졌습니다. 가운데 통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좌우로 장의자가 놓인 예배당의 크기도 만다우에 교회와 비슷했습니다.
여름성경학교 시즌이 되면 선생님들은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동물 탈을 뒤집어썼습니다. “교회에 오세요!”라고 큰소리를 외치며 동네 한 바퀴를 돌면 골목의 아이들이 하나둘 뒤를 따랐습니다.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선생님을 따라 예배당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찬양과 율동이 이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졌습니다. 예배가 끝난 뒤 교회를 나설 때 손에 작은 선물을 꼭 쥐여줬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어떤 말씀이 전해졌는지, 복음이 무엇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때 불렀던 찬양의 가사와 멜로디만큼은 아직도 머릿속을 맴돕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예수님이 참 대단한 분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찬양 가사처럼 말씀 한마디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분이었으니까요.
만다우에 교회에서 느낀 기시감은 결국 제가 어렸을 때 경험했던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알게 해준 교역자와 선생님들에게 제가 큰 빚을 졌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분들은 외국에서 온 선교사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어린 제 마음속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는 점에서 제게는 선교사와 다름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을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30여 년 전 부산의 한 교회 예배당에 앉아 있던 아이가 이제는 가족과 함께 2,800km 떨어진 세부의 작은 교회 예배당에 와 있었습니다. 제가 받은 사랑과 은혜에 비하면 이번에 제가 한 일은 보잘것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믿게 됐습니다. 지금은 만다우에 교회의 아이들도 자신의 마음에 무엇이 심어졌는지 알지 못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젠가 그 씨앗에서도 열매를 맺게 하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