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사태가 지속되면서 그 끝이 언제쯤일지 예상조차 하기 힘들어졌습니다. 유명 연예인이나 호흡기 환자들이나 성형수술 하신 분들이 주로 사용했던 마스크가 우리 일상에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우수개소리로 성형외과가 코로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는 말도 나옵니다. 이전에도 전염병의 위협은 있었지만 이렇게 광범위하고 강력한 전염병은 전대미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코로나가 우리에게 주는 불편함과 수많은 제약은 견뎌낼 수 있고 견뎌내야 합니다. 더 큰 문제는 미래를 진단하는 학자들마다 제 2차 코로나 대유행이 가을과 겨울에 휘몰아칠 것을 우려합니다. 매해 찾아오는 독감과 함께 코로나 19가 재유행한다면 사회는 더 큰 두려움에 위축되고 폐쇄될 것입니다. 독감과 코로나의 증상이 거의 비슷하기에 더 큰 혼란이 임할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듣기만해도 염려가 되고 몸서리가 쳐집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요?
지금의 코로나 전염병은 교회에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일명 ‘가나안 성도’ 현상을 이젠 공식적으로 교회가 권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예배는 꼭 지키겠다던 성도들을 향해 격려했던 과거와 달리 요즘엔 아픈 몸을 이끌고 교회 오면 눈총을 받습니다. 적극적인 전도는커녕 예배당에 들어오기까지 몇 단계의 방역 점검을 마친 후에야 가능합니다. 들어와도 스티커가 부착된 곳에만 앉아야 합니다. 새가족이 와도 등록 자체가 부담이 되었습니다. 마스크가 찬양소리를 덮었고 성도의 교제도 눈빛으로만 나누고 헤어지는 상황입니다. 교육부서 예배를 재개했어도 신앙생활 하지 않는 부모나 믿음이 약한 부모들은 자녀를 교회로 보내지 않습니다. 학교는 보내고 학원은 보내면서도 교회는 보내지 않습니다.
이런 현상이 한국교회의 현실이 되었고 우리 교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가야 할까요?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해법조차 존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잠잠해져도 이전 상황으로 회복되기까진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입니다. 그러나 코로나가 주는 신앙생활의 편안함(?)이 무뎌짐이 아니라 간절함이 되도록 영적도전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몇 가지 권면합니다.
먼저, 관계 전도와 일상 전도를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감염병이 두려운 시대에서는 지금의 전도방법은 오히려 비난받을 수 있습니다. 온 교회 성도들이 삶 속에서 전도해야 합니다. 관계 속에서 삶으로 보여주는 전도가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소그룹 전도와 활동이 점차 중시될 것입니다. 더불어 가정의 소중함이 더욱 강조되며 가정예배와 신앙 나눔이 잘 이뤄져야 합니다.
둘째, 교회 평신도 리더의 역할이 더욱 중시되어야 합니다. 교역자는 물론, 목자와 목녀들의 헌신이 더 요구됩니다. 목장에서 목자 중심의 목양이 이뤄져야 합니다. 목원들의 고충과 기도제목을 함께 공유하는 목장이 되도록 분위기는 따뜻해야 합니다. 당연히 목자는 존경받는 성도이어야 합니다.
셋째, 비대면 교제와 소통의 방법을 창의적으로 계발해야 합니다. 다양한 영상정보와 은혜로운 동영상과 서로를 향한 맞춤형 격려 메시지가 꺼져가는 신앙의 심지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키워낼 수 있습니다.
코로나 감염병이라는 거친 파도가 쓰나미처럼 몰려왔습니다. 그러나 거친 파도는 노련한 뱃사공을 만들어내듯 현 위기 상황을 잘 다루고 다가올 더 큰 파도를 영적무장으로 준비한다면 거친 파도조차 서핑의 환경이 될 것입니다. 이 일에 우리 교회가 더욱 깨어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