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는 잘 날지 못하지만 자신의 몸 크기의 이백 배나 되는 높이까지 점프하고 바람을 이용해 아주 멀리까지 이동합니다. 메뚜기의 나는 힘은 날개에 있지 않고 바람의 타이밍을 잡는 데 있는 셈입니다. 이처럼 메뚜기는 타이밍의 귀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 우리는 영적 타이밍을 제대로 분별하고 있습니까?
지금 우리는 코로나 19라는 재난 속에 살아갑니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지만 지진이나 태풍과 같은 거대한 자연재해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창궐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대한민국은 방역당국과 의료진의 수고로 잘 선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대한 공정치 못한 방역지침과 일방적인 행정명령이 교인들의 마음을 무척 상하게 만들었습니다. 교회를 마치 감염원처럼 부추겼고 언론은 함께 장단을 맞추어 교회를 마치 가지 말아야 할 혐오시설처럼 왜곡했습니다. 요즘은 기독교가 역차별 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동안 안타깝게 바라보았던 ‘가나안(안나가) 성도’처럼 많은 교인들이 ‘가나안 성도’ 생활에 익숙해진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이런 무기력한 한국교회의 현실 앞에 과연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야 할까요?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하지 못하면 우리는 현시대만을 안타까워하며 허둥대다 시간을 다 보낼 겁니다. 교회는 시대마다 다른 모습으로 증거되었습니다. 복음은 분명하지만 시대마다 복음이 확장되는 형태는 달랐습니다. 우리는 함께 모여 대형집회를 갖던 그 시절만 그리워해서는 안 됩니다. 이 시대에 적합한 대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최근 코로나 19 재난에 전혀 요동치 않는 교회들의 공통점을 발견합니다. 바로 소그룹 목장 활동이 역동적이고 체계 잡힌 교회들은 코로나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는 환경 속에 신앙생활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소그룹의 힘이며 우리의 대안이어야 합니다. 앞으로 한국교회는 대형집회나 행사중심에만 매여 있지 말고 역동적인 소그룹 중심의 사역이 잘 이뤄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성경공부만 해도 이젠 zoom 프로그램을 접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부득이한 현실 속 대안이지 일반화될 내용은 아닙니다. 다만 전통적인 패러다임 목회방식에만 매여 있다면 시대에 뒤처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소그룹이 강한 교회를 위해서는 건강한 소그룹 리더의 역할이 막중합니다. 섬김과 헌신이 무엇인지를 삶으로 보여주는 영적 리더를 통해 교회는 더욱 견고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목자(목녀)의 영혼 사랑의 마음이 충만할 때 소그룹 전도를 통한 영적 부흥이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교회는 한두 해로 끝날 것 같지 않은 이 코로나 재난 시대를 잘 준비해야 합니다. 특히 영적 리더들을 통해 소그룹의 부흥이 교회 전역에 경험되어야 합니다. 무작정 코로나가 끝나기만을 기다린다면, 앞으로 제2, 제3의 코로나가 닥쳐올 경우, 허둥대다가 가라앉을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그리고 대연중앙교회는 다시 점프하며 뛰어야 할 때를 분별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