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내려놓음’에 대한 말을 많이 합니다만 내려놓는 일은 ‘삶’이어야 하기에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내려놓음’이 힘들다고 해도 성경은 우리에게 내려놓음의 모델이신 ‘예수님’을 밝히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하늘보좌, 그 영광의 자리를 자원하여 내어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되시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이 땅 가운데 낮은 자로, 종으로 오셔서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놓으셨습니다. 자발적 ‘내려놓으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의 일을 위한 헌신과 수고도 ‘억지로’일 때가 많습니다. ‘마지못해’ 합니다. ‘내려놓음’에는 자발적인 자세와 함께 희생적인 헌신이 필요합니다. 희생을 전제하지 않는 ‘내려놓음’은 또 하나의 야망이며 위선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내려놓으심’은 타종교나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비움’과도 결이 다릅니다. 그들이 말하는 ‘비움’은 더 큰 것을 얻기 위한 비움입니다. 더 높은 경지에 이르고자 ‘비움’을 말하고 해탈과 무아지경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을 비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자기를 비우셨다’는 말은 더 낮아지기 위해 더 섬기고 사랑하기 위해 비우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내려놓으심’은 항상 낮은 곳을 향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보좌를 내려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본체 되심과 동등되심의 특권마저 포기하시고 자기를 비워 종의 자리로 나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우리 죄를 대신하시기 위한 죄수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자리까지 내려가셨습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처럼 특권의 자리가 아닌 섬김의 자리로, 자발적 낮아짐과 희생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내려놓음’의 영성을 지닌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려놓음의 영성으로 사는 자’는 자신의 영화를 위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내려놓으시되 우리의 구원을 위해 내려놓으셨습니다. 사명을 향한 ‘내려놓으심’입니다. 사람들의 박수와 인기를 위해 내려놓는 시늉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영광과 유익을 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입니다.
과연 우리는 사명을 향한 ‘내려놓음’이 있습니까? 복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위해 내 안에 욕심과 미움과 자존심을 내려놓고 있습니까? 성도의 내려놓음은 썩어지는 밀알처럼 철저히 죽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예수님만 죽게 하니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십자가 정신으로 성도가 죽고 목사가 죽고 교회가 죽어야 하는데 움켜쥐려고만 하고 욕심을 부리니 세상을 감동시키기는 커녕 악취나는 삶을 사는 것이죠!
우리는 내려놓음의 모델이신 예수님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모든 특권과 영광을 내려놓으시되 자발적으로 낮아지셨고 자신을 비워 희생하셨을 뿐 아니라 사명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내려놓음’이 삶이 되고 우리의 신앙과 영성이 되시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