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를 생각할 때면 가슴 뭉클해지다가도 부활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 무감각해지는 경향이 많습니다. 아마도 ‘부활’이 너무 비현실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분은 예수님의 ‘고난과 피 흘리심’은 리얼한 사건으로 믿겠는데 ‘부활하셨다’는 말을 듣는 순간 왠지 판타지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믿겠는데 부활은 믿지 못하겠다고 말한다면 예수님을 온전히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함께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피 흘리심으로 우리의 ‘죄’ 문제가 해결되었고 죄의 결과로 임하는 ‘사망’의 문제는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해결되었습니다.
부활이 얼마나 중요한지요. 사도바울은 ‘부활이 없다’고 하는 자들에겐 그들의 믿음도 헛것이라고 말합니다(고전15:12-14). 이처럼 부활은 믿음의 핵심이며 고난 중에도 역사하는 소망이 됩니다. 세상에 다른 종교와 철학에는 ‘부활’이 없습니다. 모든 종교마다 죽음 이후를 말하지만 ‘부활’이라는 단어를 쓰거나 부활을 증명해내는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습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의 죽음 이후의 부활을 말씀하면서 예수님의 부활뿐 아니라 성도의 부활을 약속하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빈 무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명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 발견한 사람들은 여자입니다. 당시 여성들의 증언은 신뢰를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만약 사람들에게 부활을 믿게 하려는 의도로 부활을 꾸며냈다면 ‘여성’을 등장시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너무나 분명하고 다수의 증인들이 가득했기에 사실대로 여성들을 부활의 첫 증인 됨을 언급한 것이죠! 게다가 예수님의 빈 무덤에는 세마포가 놓였고 그 머리를 쌓던 수건은 샀던 형태 그대로 놓여 있었습니다. 누군가 도둑질해 갔다면 당연히 예수님의 시신을 싸맸던 수건과 세마포가 입혀진 시신을 가져갔을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세마포와 수건으로부터 몸만 빠져나오는 신비한 방식으로 이뤄졌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빈 무덤은 예수님의 부활을 입증하는 공간이 되며 세마포와 수건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물증이 되고 막달라 마리아와 제자들과 그 외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증인이 되는 것이죠!
제자들에게 빈 무덤은 처음엔 당황스럽고 괴로운 일이겠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자에겐 너무나 확실한 부활의 증거이며 슬픔이 아닌 기쁨이며 근심과 염려가 아닌 평안이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두려워하며 문들을 닫고 있던 제자들을 찾아와 친히 평강을 전하셨습니다(요20:19). 그러므로 부활을 믿는 우리의 삶 역시 기쁨과 평강의 삶이어야 합니다. 세상이 주는 두려움 속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 평강을 누리고 담대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제자들의 변화된 삶이 부활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두려워 문들을 닫고 있던 제자들이 갑자기 세상을 향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였고 공회에 끌려가도 당당했으며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은 그들의 삶이 바로 부활의 위대한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부활 신앙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죽음이 누르지 못하며 무덤이 가두지 못하는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가십니까? 부활하시어 지금도 살아계시고 우리에게 기쁨과 평안을 주시는 예수님을 믿기에 날마다 승리하며 살아야 합니다. 부활 신앙으로 승리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