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이 주어집니다(요1:12). 하나님의 자녀라는 특권과 함께 언제라도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는 권한도 주어집니다. 구약시대에는 오직 대제사장만이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인 지성소에 중보자로서, 그것도 일 년에 한 번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가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습니다(19절).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놀라운 특권입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열어놓으신 그 길은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 가운데 열어놓으신 길로 하나님의 임재 앞에 언제라도 나아갈 수 있는 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의 ‘찢겨진 몸’과 ‘찢어진 휘장’을 통해 ‘살 길’이 열렸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Living Way’ (살 길)이 열렸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겐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그 어떠한 다른 대제사장의 중보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완전하시고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특권에만 취해있으면 안 됩니다. ‘특권’이 있기에 ‘책임’도 따르는 법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특권과 함께 책임도 말씀하십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 ‘서로’라는 단어 속에 교회의 공동체적 삶을 일깨워주십니다. 교회는 거룩한 공동체이기에 서로를 배려하는 삶은 기본이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알아서 잘하면 되는 각개전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살피고 권면하는 공동체이어야 합니다. 사랑하고 선한 일에 힘쓰며 모이는 일에도 힘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내가 알아서 신앙생활 하겠다는 분들’이 많아졌는데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이 개인주의가 되면 ‘교회다움’의 많은 부분을 놓치게 됩니다. 물론 ‘개인 영성’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공동체 영성’을 무시하면 영적 교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예수님 역시 제자들을 불러 공동체를 이루셨고 삶을 보여주고 함께 하는 방식으로 제자로 키우셨습니다. 비뚤어진 개인 영성이 ‘나 홀로 신앙’이라는 독선을 갖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의 보혈을 힘입어 하나님께 언제라도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서로 돌보아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하며 모이기에 더욱 힘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코로나 시대, 함께 모이는 일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자연히 ‘개인영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꼭 기억해야 할 것은 ‘공동체 영성’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모이기에 힘들수록 더욱 현장예배를 사모해야 합니다. 성도의 교제와 섬김을 향한 열망도 넘쳐야 합니다. 그래서 코로나 시대의 먹구름이 걷히는 순간 은혜를 사모하는 자들이 함께 모여 공동체의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눔 질문 1. 예수님을 믿는 자가 누리는 특권은 무엇인지 나눠봅시다.
2.예수님을 믿는 자가 행해야 할 책임은 무엇이며, 그 책임을 잘 지키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