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내일의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내일이 없는 오늘은 존재할 수 있어도 오늘이 없는 내일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충성하지 않고 내일 충성하겠다는 말은 게으른 변명일 뿐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내일이나 일 년 후와 같은 ‘앞으로의 시간’은 내 영역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베푸셔야 가능한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베푸신 일상의 은혜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엔 헛된 장담과 허탄한 자랑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계획엔 엄청난 문제점이 보입니다. 바로 자신을 시간의 주인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어디에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거나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자기 자신이 모든 계획과 시간과 물질에 있어 주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시간과 생명 앞에서 늘 겸손해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우리의 생명도 영원하지 않고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고 권면합니다(14절). 아무리 짙은 안개라도 해가 뜨면 사라지듯 우리의 생명 역시 유한하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물론 15절에 ‘주의 뜻’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만 16절에 보면 그들은 말만 그럴 뿐 결국 ‘허탄한 자랑’을 합니다. 물질과 시간과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허탄한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의 성도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상을 소중이 여기며 삶이 힘들어도 말씀 붙잡고 견디는 사람입니다. 요셉의 경우, 그의 인생엔 대단한 기적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오히려 형들의 시기 질투를 받아 노예로 애굽에 팔려 갑니다. 게다가 억울하게 감옥에도 갇힙니다. 그때 과연 요셉이 감옥에서 무엇을 위해 기도했을까요? 먼 미래에 ‘총리’가 되게 해달라거나 ‘꿈을 해석하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구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저 감옥 안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믿음 달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다윗도 사울왕에게 쫓기면서, 훗날 왕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오늘을 견디고 살아낼 믿음 달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주어진 일상에 믿음으로 성실하게 반응할 때,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높이시고 이루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10년 후가 안 보인다고, 내일 일을 잘 모르겠다고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일상의 은혜를 귀히 여기며 말씀으로 오늘을 견뎌야 합니다. 이를 위해 ‘나의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을 찾고 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나의 인생 설계도를 가지고 내가 이루었다고 말하면 그것은 ‘허탄한 자랑’이 되지만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이루셨다고 하면 ‘신앙 간증’이 됩니다.
코로나 시대, 예전에 평범했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상이 많이 그리워집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는 시간과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계획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고단한 인생길에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상의 은혜를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라기는 하나님이 주신 일상의 은혜를 알고 하나님의 꿈을 나의 비전으로 삼아 하루하루 충성스럽게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나눔질문 1. 모든 시간과 물질과 생명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을 인정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2.일상을 귀히 여기는 삶이 중요한 이유를 요셉과 다윗과 예수님과 연결지어 나눠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