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세계는 약한 자가 먹히고 강한 자가 먹는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세계입니다. 세상의 원리도 그와 비슷한 ‘적자생존’의 원리가 존재합니다. 적응하는 자만이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낙오되고 도태되는 것이 세상의 원리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원리는 ‘섬김의 원리’입니다. 그래서 약한 자를 돕고 믿음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주고 세워줘야 합니다. 교회는 강한 자를 위한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되며 강함을 자랑하는 교회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 주님처럼 우리도 힘겨운 코로나 시대에 서로를 세워줘야 합니다. 교회는 일 중심, 행사 중심, 성과주의에 몰입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지쳐 있고 힘겨워하는 성도들을 돌아보아 권면하고 격려하는 일들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은 사도바울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전체 문맥으로 보면 ‘재림을 사모하되 현재 살아가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서로 격려하고 권면하라’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역시 성도 중에 게으른 자들, 마음이 약한 자들, 힘이 없는 자들을 교회가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말씀합니다.
먼저,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게으른 자들’은 행동이 굼뜬 사람이 아니라 ‘질서 밖에 있는 사람’으로 당시 ‘낙오한 병사’에 사용된 단어입니다. 교회의 방향에 함께 따라오지 못해 낙오하여 질서 밖에 있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에겐 ‘권계하라’고 말씀합니다. ‘권계하라’는 말씀은 ‘제대로 훈계하고 가르치라’는 말입니다. 또한 “마음이 약한 자들에 대해서는 격려하라”고 말씀합니다.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겐 격려가 많이 필요합니다. 세상이 교회를 위로하지 않기에 교회인 우리는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마음이 상한 자들, 마음이 연약한 자를 격려해야 합니다. 또한, “힘이 없는 자를 붙들어 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힘이 없다’는 말은 육체적으로 기력이 약하다는 말이 아니라 ‘믿음이 약함’을 의미합니다. 초대교회의 힘든 상황에서 믿음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주의 재림을 기다리되 서로 붙들어주고 믿음이 약한 자가 넘어지지 않도록 서로 지지하고 붙들어주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오래 참고 견뎌냄’으로 지속되어야 할 일임을 말씀합니다.
세상은 ‘부족한 자, 연약한 자, 믿음 없는 자’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고 포기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연약한 지체를 끝까지 격려하며 돕고 붙들어줘야 합니다. 코로나 기간, 믿음이 약해진 자가 있으면 우리는 그들을 정죄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신앙의 낙오자가 되지 않도록 잘 붙들고 이끌어줘야 합니다.
우리도 연약한 자요. 한없이 부족한 자였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포기하거나 버리지 않으셨고 받으셨습니다. 지금도 우리를 오래 참아주시고 격려하시며 붙들어주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당신이 아무리 약하다 할지라도 당신을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로 주님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나눔 질문 1. 세상의 원리와는 다른, 교회(신앙)의 원리는 무엇입니까?
2. 왜 우리가 연약한 자들을 포기하지 말고 세워줘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