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과 ‘실제’는 다르다고 합니다. ‘배움의 교실’과 ‘살아가는 현실’ 역시 다릅니다. ‘목회신념’과 ‘목회현장’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존재합니다. 목회를 하면서 ‘직분’에 대해 느껴지는 제 마음이 바로 이러합니다. ‘직분자 선출’에 있어 저의 목회신념은 잘 훈련되고 헌신하며 순종할 줄 아는 분들이 피택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의 직원선출은 절대 인기투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연수를 마치 경력처럼 인정하여 ‘때 되면 받는 개념’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교회의 공동의회는 거룩한 모임이기에 세상적인 방법이 동원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서의 투표는 자신을 홍보하기 위해 선거운동을 하고 관심을 끌만한 공약을 내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본주의’에 입각한 교회의 직원선출은 ‘평소’에 헌신하고 충성된 자들이 공동의회를 통해 공적으로 인정받고 격려받아 세워지는 것입니다.
부임한 후, 직원선출이 단순히 ‘인기투표’가 되지 않도록 대상자들의 신앙생활을 당회에서 점검했고 선출 인원의 배수를 ‘후보자’로 공천해왔습니다. 사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속한 당회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힘들고 부담되는 작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칫 비난의 화살을 다 맞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교회에서의 ‘직원선출’은 인기투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힘든 방법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배생활과 봉사와 헌금생활(십일조)과 성경훈련과 가족신앙까지 모두 충족시키는 분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목사를 곤혹스럽게 하며 타협의 길을 걷게 합니다. 그래서 예배생활과 십일조를 제외한 다른 조건들은 모두 충족되지 않았어도 ‘앞으로 잘할 것을 기대하며(?)’ 후보로 올리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것은 제 ‘목회신념’과는 맞지 않습니다. 마음에 부담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배수공천시 같은 조건이라면 ‘연장자’에게 우선권을 드렸습니다. 어쩌면 이것도 ‘타협’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민은 저뿐만이 아닌 많은 목사들의 고민인 듯합니다. 그래서 어떤 교회는 철저한 기준을 가지고 그 기준에 하나라도 부합되지 않으면 아예 후보자로 올리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가끔은 이렇게 ‘강단이 있는’ 목회자들을 보면 부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서리집사’를 세우는 일에도 ‘타협’해 버렸습니다. 원래 ‘서리집사’는 대상자의 신앙에 따라 언제라도 누락 될 수 있는 임시 직원입니다(교회정치 4장 34조). 그런데 한국교회 안에서 ‘서리집사’는 이미 ‘항존직’이 되었습니다. ‘한 번 서리집사는 영원한 서리집사’가 되었으며, 그 어떠한 헌신과 신앙의 열정이 없는데도 집사 명단에서 누락이 되면 그 일로 교회와 척(隻)을 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 목사는 또 다시 타협을 합니다.
이번 임시 공동의회도 어쩌면 ‘타협’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작년에 장립집사와 권사로 피택된 분이 너무 적었다는 이유로 다시 직원선출을 한다는 것이 혹여 인본주의적 발상은 아닌지 많은 고민도 해보았습니다. 그나마 양해를 구하는 것은, 코로나 이후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더 많은 일꾼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신념’과 ‘목회현장’ 속에 갈등하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러다 보니 서서히 타협하는 목사가 되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교회가 아프지 않고 더 든든히 세워져 갈 수만 있다면 계속 타협하는 목사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 주일, 임시 공동의회를 통해, 누가 피택 되더라도 이후엔 더 철저히 자격을 갖추시기 바라며, 이 일로 마음이 아픈 자가 없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