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영혼구원하여 제자 삼는 교회’라는 설계도를 교회에 맡기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으로 ‘교권주의’가 등장했으며 이후 교회들도 하나님의 뜻과는 너무 먼 ‘기형적인 교회’로 변질되었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복음을 널리 전파하고 성도를 돌보는 목양의 일이 항상 평신도들의 사역이었습니다. 그들의 수고와 헌신을 통해 교회는 건강하게 성장해갔습니다. 바울과 동역했던 사람들 역시 대단한 신학교 출신이나 전문사역자가 아니라 일상에서 생업을 하던 자들 중에 말씀으로 훈련받던 평신도 사역자들이었습니다.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원하셨던 교회의 모습도 이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로마시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AD313)하였고 황제 테오도시우스에 의해 기독교가 국교로 정해지면서(AD380) 점점 종교권력이 막강하게 됩니다. 교황을 비롯한 소수 종교권력자들에게 특권이 집중되고 교회는 엄청난 부를 갖게 됩니다. 교회는 화려한 건물 중심으로 바뀌었고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엔 엄청난 간극이 생깁니다. 이렇게 제도화되고 형식화된 교회가 로마 카톨릭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과정 속에 평신도는 사역에서 배제되고 성직자 중심의 교권주의 시대로 바뀌었습니다. 교권중심, 사제중심이 되면 될수록 평신도의 사역은 자연스럽게 힘을 잃게 되었습니다. 교회 역사 속에서 중세 사제들은 잘못된 교권주의를 가지고 신자들 위에 군림했습니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은 성경조차 자신들의 것으로 독점해 버렸습니다. 로마 카톨릭교회에서는 사제들이나 전문 교육을 받은 사람만 읽을 수 있는 라틴어 성경만을 공식적인 성경으로 제한했고 번역했던 것이죠.
초대교회의 원래 모습은 평신도가 복음 사역과 목양사역에 중심에 서서 교회를 세워가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 훈련받은 평신도들이 사도들과 함께 교회를 든든히 세웠습니다. 하지만 교권주의를 통해 평신도 사역이 약화된 것입니다. 이후 교회들 역시 사제중심주의의 사고로 많이 변질되었습니다. 그간 교회들은 평신도들을 신실한 예수님의 제자로 키우기보다 그저 목사의 말을 잘 따라주는 사람으로 만드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 결과 목사는 평신도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평신도들은 목양하지 않고 뒷짐 지거나 팔장 끼는 자들로 전락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말씀 사역자들의 역할은 성도들을 잘 훈련하고 준비시켜 봉사(목양)의 일을 하는 데 있음을 말씀합니다. 이런 점에서 말씀사역자들은 성도들을 주의 말씀으로 훈련하여 영적 군사로 세워가는 일을 해야 합니다. 평신도 사역은 무기력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평신도 사역은 목회자와 함께 목양을 하고 섬김과 봉사를 통해 예수님의 몸인 교회를 든든히 세워가는 일입니다. 목장도 작은 교회이기에 그 안에서 목양이 일어나고 섬김이 일어나야 합니다. 심방과 돌봄과 영혼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평신도라고 교회의 사역에 방관자가 되거나 교역자들을 향해 감시자나 평가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탁월한 소수의 목회자로 놀라운 일을 해내는 교회가 아니라 온 성도가 주의 말씀으로 잘 훈련받아 모두가 함께 목양하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평신도 사역자들이 주도적으로 사역하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목양은 우리 모두가 해야 합니다. 대연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이 복된 사역을 통해 교회를 온전히 세워 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