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중에도 성도는 승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기쁨 공식]이 필요한데요. 그것은 약함을 강함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내 삶에 적용하며 답을 찾는 삶의 공식입니다. 과연 우리는 ‘기쁨의 공식’을 삶 속에 잘 적용하고 있습니까? 혹시 수학 공식은 잘 아는데 ‘기쁨의 공식’은 잊고 사는 것은 아닙니까?
사람들이 기쁨의 공식을 삶에 적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비교의식’과 ‘사람들의 허탄한 말’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가 크신데 나보다 훨씬 많이 누리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감사를 잃어버리고 낙심하게 됩니다. 자족하는 마음이 없으니 마음에 기쁨이 고갈되는 것이죠! 이런 점에서 비교의식은 우리의 영성에서 기쁨을 빼앗아 갑니다. 만약 우리의 마음에 기쁨을 항상 머물게 하시길 원하신다면 비교의식을 버리고 자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에 기쁨을 빼앗는 것은 사람과의 비교의식뿐 아니라 과거와의 비교의식을 통해 일어납니다. 과거에 화려했던 삶을 살았던 사람의 경우, 현재 상황이 과거에 비해 만족스럽지 않을 때, 기쁨을 잃어버리고 원망하고 불평하곤 합니다. 우리는 바꿀 수 없는 과거에 매이지 말고 기뻐할 수 있는 현실에 충실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음에 기쁨을 빼앗아가는 것은 ‘사람들의 허탄한 말들’입니다. 누군가의 말 한 마디에 고요했던 우리의 마음이 요동칩니다. 사람들의 허탄한 말이 신실한 성도의 눈에서 눈물 나게 만들고 마음의 평정심을 잃게도 만듭니다. 사람들의 허탄한 말을 들으면 마음의 기쁨이 사라집니다. 하지만 참된 기쁨의 원천이 바로 주님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환경이 기쁨의 원천이 아니며 세상이 주는 쾌락이 참된 기쁨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기쁨은 여호와 하나님을 통해 주어집니다(시 37:4). 그러므로 우리는 주안에서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주 안에서의 기쁨은 환경을 초월한 기쁨입니다. 사도바울도 자신은 비록 로마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이었지만 빌립보 교회를 향해 ‘주안에서 기뻐하라’고 강조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에 대해 말씀합니다. ‘주께서’ 마음에 기쁨을 두셨다고 말씀합니다. 기쁨을 주시는 주체가 바로 ‘주님’이심을 말씀합니다. 이런 점에서 내 마음에 기쁨이 사라져갈 때, 주님과 더 깊이 교제하시고 소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친밀함을 통해 기쁨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참된 기쁨은 생명의 근원이시며 기쁨의 원천이 되신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으로 말미암는 기쁨이 근심 걱정을 몰아내며 평안을 누리게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은 세상의 풍요나 어떤 부요함보다 더 귀하고 아름답습니다(7절).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지금까지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절기입니다. 코로나 시대, 환경적으로 보면 기뻐할 일도 없고 근심 걱정이 많아 보이는 우리의 삶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기에 하나님과 소통하고 있다면 참된 기쁨을 누리는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로 사라진 기쁨이 주님 주시는 기쁨으로 회복되길 바라며 이 어려운 시대에도 감사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