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높이 사랑 (고전 9:19~23)
교회가 한 가족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서로의 눈높이에 맞추고 상대의 영적 수준에 맞게 대해야 합니다. 새가족이나 다음세대를 향해서도 그들에게 맞춰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내 관점과 견해와 생각에 다른 사람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에 나를 맞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가 좋고 익숙한 교회에 머물지 말고 새가족과 다음세대에 눈높이를 맞추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눈높이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보좌에서 호령하는 권위가 아니라 이 땅 가운데 낮아지심으로 임하신 눈높이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 가운데 임하신 낮아지신 눈높이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기 위해서는 겉옷을 벗으시고 제자들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야만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새가족과 다음세대를 향해 낮은 자세로 눈높이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영혼구원을 위한 바울의 헌신된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구원받아야 할 영혼에 초점을 맞추고 그들을 향해 자신을 낮추는 눈높이 사랑입니다. 이 일을 위해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율법 아래에 있는 자에게는 율법에 매인 자와 같이 되었으며 이방인들에게는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지조가 없는 행동이 아니라 구원받아야 할 영혼에 집중하여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사랑을 실천했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눈높이 사랑을 위해서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대접받으려 하거나 터줏대감처럼 목에 힘주는 사람은 눈높이 사랑을 실천할 수 없습니다. 종이 되고자 하는 자들만이 눈높이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내려 보거나 강압적인 자세로는 눈높이 사랑을 실천할 수 없습니다.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또한 눈높이 사랑을 위해서는 내 중심적 신앙에서 약한 자 중심의 신앙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가정에 갓난 아기가 태어나면 가족 구성원이 이 아이에 모든 관심과 시선을 집중하며 자연스럽게 가정의 라이프 스타일이 갓난아기 중심으로 맞춰지는 것처럼 교회 역시 약한 자를 배려해야 합니다. 또한 눈높이 사랑을 위해서는 영혼을 살리려는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눈높이 사랑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도 ‘눈높이’를 말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얻는 정도가 아니라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목적’이어야 합니다. 구제도 좋고 봉사도 좋고 분위기 좋은 목장모임도 좋지만 그 모든 사역은 ‘영혼구원’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사도바울처럼 눈높이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는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보여주신 눈높이 사랑, 그리고 사도바울의 사역의 원리였던 눈높이 사랑이 우리의 사역 원리가 되어야 합니다. 눈높이 사랑을 아름답게 실천하는 대연중앙교회 모든 성도님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질문) 1. 눈높이 사랑을 실천해야 할 대상자를 생각하며 나눠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