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과 또 다른 나눔 (행 11:19~30)

by admin posted Oct 1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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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 또 다른 나눔 (11:19~30)

 

우리 말의 나누다라는 단어는 ‘divide’의 개념의 경계를 구분하고 분리시키는 나눔의 개념이 있는가 하면 일을 배분하고 제공하는’ ‘give’ 개념의 나눔이 있습니다. 게다가 돕는 개념‘share with’나누다의 의미가 있습니다. 모두 의미는 다르지만, 발음은 같은 경우입니다.

 

먼저, ‘경계를 구분하고 분리하는 나눔은 세상에 만연되어있는 개념입니다. 사람을 등급으로 나누거나 특권층을 구분할 때 많이 쓰는 개념입니다. 백화점에 가도 일반회원이 있고 특별관리하는 VIP 회원도 있습니다. 고객도 등급에 따라 대우도 특혜도 다릅니다. 이처럼 등급과 순위를 정하는 나눔의 개념은 어쩌면 우리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수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누는 일이 차별과 배척을 위해 행해지는 일이라면 불행한 일입니다. 차별과 배척을 위해 지역을 나누고 남녀와 세대를 나누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앞부분은 스데반의 순교 후에 성도들이 흩어졌는데 문제는 흩어져서 복음을 전할 때 유대인에게만전하고 헬라인(이방인)에는 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분리하는 나눔이 있습니다. 하지만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였습니다. 그러자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집니다. ‘분리의 나눔이 사라지자 교회가 세워지고 놀라운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도 편견으로 선을 긋는 분리의 나눔은 사라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도 우리를 자녀 삼으실 때 차별의 선을 긋지 않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습니다.

 

또 다른 나눔의 개념으로 분배하고 제공하는개념이 있습니다. 먼저 바나바는 예루살렘교회에서 안디옥 교회가 세워지자 잘 살피고 양육하도록 파송된 사람입니다. 하지만 바나바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역을 사울(바울)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부흥을 자신의 공로나 권리로 내세우지 않았고 사울(바울)과 함께 사역을 공유하고 분배함으로 더 큰 부흥을 경험합니다. 바나바는 사역을 홀로 독점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동역함으로 더 큰 부흥을 경험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또 다른 나눔의 개념인 긍휼의 마음으로 도우려는 나눔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온 선지자들 중에 아가보라는 사람이 예루살렘에 큰 흉년이 임할 것이라는 예언을 받고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교회를 위하여 힘을 다해 구제금을 모읍니다. 여기에 진정한 나눔이 존재합니다. 안디옥교회도 힘들지만, 더 힘든 예루살렘교회를 위하여 부조를 보낸 것입니다. 그동안 예루살렘교회가 안디옥 교회가 믿음으로 잘 세워지도록 바나바를 파송했다면 이젠 역으로 안디옥교회가 예루살렘교회를 돕겠다고 물질을 보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나눔입니다. 하나님은 선을 행하며 서로 나눠 주는 것을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제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어떤 나눔을 실천하길 원하십니까? 분리의 나눔입니까? 분배의 나눔입니까? 도움을 위한 나눔입니까? 바라기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또한 연약한 자들을 위해 나눔을 실천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길 축복합니다.

 

질문) 나눔의 다양한 의미를 정리하고 나에게 필요한 나눔에 대해 생각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