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가 힘들다고 느껴질 때
성도님들 중에 저를 보실 때마다 “많이 피곤하시죠?”, “많이 힘드시죠?”라고 묻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그래도 목사가 할 일 없이 노는 목사가 아니라는 것을 표현해 주신 것 같아서 감사하면서도 그동안 제 표정이나 얼굴 상태가 좋아 보이진 않았나 싶어 송구스럽기도 합니다. 물론, 목회가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일을 경험하는 사역이기에 왜 힘들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저는 좋은 성도님들을 만나 마음 편하게 목회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목회를 하면서 가끔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몸이 힘들어서도 업무의 과중함 때문도 아닙니다. 교인이 성숙해지길 원하는 마음으로 함께 나아가자며 독려해도 성도들의 반응이 너무 무심하게 느껴질 때 오는 목회자의 무기력감이 힘듦이 됩니다. 얼마 전, 성도의 유익을 위해 평신도 세미나의 참여를 권하고 노방전도가 아닌 요즘 시대를 합한 관계전도 훈련을 힘들게 준비하여 참석을 독려했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갑자기 저도 모르게 ‘엘리야 증후군’(과도한 기대와 열정으로 인한 낙심)이 몰려왔습니다. 성도들도 편하게 신앙생활 하도록 내버려 둘 수 있겠고 저 역시 편하게 목회할 수도 있을 텐데 왜 굳이 힘든 길을 선택해서 서로 마음 고생을 하는가 싶어 내려놓고 싶은 ‘엘리야 증후군’이 저를 지치게도 합니다. 하지만 기도하면서 또다시 깨닫게 되는 것은 ‘그래도 가야 할 길’이라는 주님의 음성 앞에 다시 일어섭니다.
헌신과 희생이 부족한 시대를 사는 우리, 내 육신과 자녀를 위해서는 그 어떤 것도 희생할 수 있지만 내 신앙과 영혼을 위해서는 어느 것도 희생하지 않으려는 이기주의가 가득한 요즘의 교회 상황은 목회자들에겐 큰 벽처럼 느껴집니다. 피리를 불며 함께 춤을 추자고 해도 흥을 내지 않고 슬피 울며 가슴을 치자고 해도 아무런 반응이 보이지 않는 무감각한 교회의 모습에 예수님의 안타까워하시는 외침을 들을 수 있습니다. (마 11:17)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이 말씀은 그간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행하신 여러 기적을 보고도 메시야로 믿지 않는 인생들을 향한 예수님의 안타까워하시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안타까움이 헌신하지 않고 희생하지 않는 한국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안타까워하시는 탄식 소리와도 같을 겁니다.
목사가 힘든 만큼 성도는 행복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항상 맞는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힘들게 마음을 쏟았으나 성도들이 따라주질 않을 때, 열정을 쏟았으나 오히려 성도들의 관심이 약할 때 목사는 더 큰 실망감에 빠지게 됩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셈이죠. 그러나 우리는 함께 일어나 가야 합니다. 목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잘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명을 전하고 살리기 위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편안함의 자리에 안주하지 말고 사명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대연중앙교회에 있는 이유이며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모두 힘들어도 주님의 영광을 위해 함께 손잡고 나아가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