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어린 시절 들었고 불렀던 많은 노래 중에 ‘얼굴’이라는 노래가 문득 떠 오릅니다. 아마 저와 연배가 비슷하거나 위 이신 분들이라면 한 번쯤 따라 불렀을 것입니다.
♬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 마음 따라 피어나던 하얀 그때 꿈을
풀잎에 연 이슬처럼 빛나던 눈동자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면서 그동안 우리 교회 많은 성도님이 그리움을 남기시고 천국에 가셨음을 떠올려 봅니다. 신실하게 예배와 기도의 자리를 지키셨던 그분들의 자리는 지금은 다른 분의 자리로 대체 되었지만, 그때 그 자리를 지키며 앉으셨던 먼저 간 성도님의 얼굴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제가 처음 부임해서 펼쳐보았던 교회 요람 속 많은 얼굴이 지금은 보이지 않습니다. 소천하신 분들도 계시고 거동이 불편하여 교회에 나오지 못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어떤 성도님은 자녀들이 사는 지역으로 이사 가신 분도 계시고 간혹 연락 두절 되어, 어떻게 지내시는지 알 방법이 없는 분도 계십니다. 오랫동안 뵙지 못하면 점차 얼굴도 잊혀지겠지만 오래된 요람을 보니 그분들의 얼굴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생각납니다.
어느 성도님은 교인들의 얼굴이 많이 바뀌어서 모르는 분들이 많아졌다고 말씀하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유한한 인생에서 떠남의 시간이 언젠가 도래하기에 익숙했던 얼굴이 사라지고 낯선 얼굴로 채워지는 순환의 원리는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은 믿음의 사람은 ‘수명’이 다해 죽는다기보다 ‘사명’을 마치고 주님의 부르심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앞서가신 분들이 이 땅에서 붙잡고 사셨던 사명은 이제 남은 자들의 사명이 되어 우리에게 고스란히 연결된 것이죠.
5월 가정의 달, 무심코 보았던 요람 속 얼굴이 그리워집니다. 제 손을 따스하게 잡아주셨던 어르신들, 아픈 몸을 이끌며 예배와 기도의 자리를 지키려 애쓰셨던 그분들의 모습이 그리움으로 다가옵니다. 그분들이 수호했던 예배의 자리와 타협하지 않았던 믿음의 삶이 지금도 우리의 기억 속에 살아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소위 ‘믿음 장’에 보면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고 말하면서 아벨의 삶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그는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제가 빛바랜 과거 요람에서 보았던, 우리 교회도 세월 따라 신앙의 선배들이 소천하셨지만,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우리에게 바른 신앙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예배를 향한 간절함과 신실한 기도 생활과 철저한 헌금 생활과 뜨거웠던 헌신이 우리에게 살아있는 도전과 영향력으로 다가옵니다. 느슨해지고 흐트러진 우리를 향해 바른 신앙을 도전하고 있습니다. 앞서가신 분들의 예배 자리와 믿음의 삶이 편한 신앙을 추구하는 오늘의 우리에게 말씀으로 도전합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그분들의 얼굴이 그리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