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드니까 헌신이며 희생하니까 목자입니다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책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젊은 청춘들에게도 상상하기 힘든 아픔과 불안이 있음을 소개하며 격려하는 수필집입니다.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하자면, ‘청춘이란, 아픔이라는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붙들고 키워가야 할 특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매주 목장 모임을 인도해 가는 목자(목녀)를 볼 때면, 담임목사로서 고마우면서도 송구하기도 합니다. 담임목사 잘못 만나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이 그저 목자 가정을 위해 기도해 드리는 것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저는 목회 칼럼의 제목으로 격려하고 싶습니다. ‘힘드니깐 헌신이며 희생하니까 목자다!’ 이 말 역시 다르게 표현하면, ‘목자(목녀)는 어떤 희생과 힘듦을 통해서라도 붙들고 키워가야 할 특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땅에서는 많은 격려와 보상을 못 받더라도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칭찬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 앞에 섰을 때, ‘그래도 저는 예수님의 삶을 실천하기 위해 목자(목녀) 일 하다가 왔습니다.’라고 말하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가정교회에서 가장 많이 강조하는 것은 ‘헌신과 섬김’입니다. 헌신과 섬김이 없으면 도무지 신약교회의 회복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목사부터 ‘섬김의 리더십’이 없고 희생하지 않으면 솔직히 가정교회는 잘 실현될 수 없습니다. 아마 목사인 제가 이 부분이 부족해서 우리 교회도 더욱 안정적으로 가정교회가 실현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약교회로의 실현을 위한 가정교회가 어려운 것은 낮아짐과 희생과 섬김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대접받고 인정받고 보상받는 것이기에 이러한 본성에 역행하는 가정교회 정신이 우리에게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교회로서의 전환에 있어 가장 힘든 부분이 평신도 지도자인 목자와 목녀가 과도히 지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교회에서 활동비를 받지도 않으면서 지속적으로 섬겨야 하는 일이다 보니 점차 부담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목자(목녀)에게만 특별대우를 하는 것은 또 하나의 특권층을 만드는 것일 수 있으며 하나님의 상급을 약화시키는 일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목자(목녀)가 지치지 않도록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일은 너무나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격려와 위로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격려와 상급’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쉬운 헌신은 없습니다. 희생하지 않는 목자는 목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목자(목녀)로서의 목양이 가치 있고 영광스럽고 하나님이 귀히 여기십니다. 이 거룩한 일에 힘들고 많은 희생이 있더라도 넉넉히 잘 감당하며 섬기시는 목자(목녀)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