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영광은 십자가 고난 뒤에 옵니다.
지난 주간 저는 목감기와 몸살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매해 고난주간 즈음이면 몸이 아팠던 기억도 납니다. 아마 환절기와 바쁜 교회 사역이 겹쳐 몸에 무리가 된 것 같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목소리가 잘 나오질 않아 특별새벽기도회와 수난절금요예배 인도에 대한 걱정으로 한 주를 보냈습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목이 쉰 상태여서 설교 외에 다른 말들은 많이 줄였다는 것입니다. 말이 많으면 실수도 많은 법인데 최대한 말을 아낀 고난주간인 것 같습니다. 몸이 아프다는 것은 약해졌다는 의미와 함께 몸을 더 잘 돌봐야 한다는 경고를 담습니다. 그간 무관심했던 건강관리에 경종을 울리며 적절한 쉼의 필요성도 일깨워 줍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몸은 회복되고 건강을 찾아갑니다.
오늘은 부활의 영광이 가득한 부활주일입니다. 하지만 부활의 영광을 맞이하기 전에 십자가 고난이 있음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고난의 십자가를 통과해야 부활의 영광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난의 과정을 겪으면서 인내를 배우고 소망 중에 부활의 영광을 맞이합니다. 초대교회 사역자들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고난 이후에 있을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수많은 핍박과 환난 중에도 예수 십자가 이후에 약속하신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성도의 정체성 역시 고난을 뚫고 부활의 영광을 경험할 자입니다.
우리는 흔히 ‘고난을 뚫고 지난다’는 표현을 터널을 지나는 것으로 비유합니다. 인생의 고난을 통과하는 길이 마치 답답하고 캄캄한 터널을 지나는 것과 같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터널이 주는 교훈과 함께 고난의 유익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가끔 터널에 들어갈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습니다.
먼저, 터널에 진입하는 순간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와 함께 ‘안전운전! 안전운전!’이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것은 터널이 그만큼 사고 나기 쉽고 위험한 곳이니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경고음입니다. 우리가 고난의 터널에 진입하는 순간 경각심을 가지고 주의해야 합니다.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또 하나의 교훈은 터널은 반드시 끝이 난다는 사실입니다. 터널의 어둠은 언젠가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터널의 어두움에 있어도 결국 우리는 터널 밖 광명을 기대합니다. 어둠을 뚫고 맞이하는 광명의 빛은 눈부실 만큼 찬란합니다.
마지막으로 터널이 주는 교훈은 터널이 뚫린 곳이 지름길이라는 사실입니다. 터널이 뚫린 길은 항상 최 단거리입니다. 단거리의 효율성이 산을 뚫고서라도 터널을 만들게 한 것입니다. 결국 우리도 고난의 터널을 지나면 그 길이 가장 빠른 길로 인도된 길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부활의 영광은 깊은 죽음의 터널을 뚫고 임한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무덤의 공허함과 두려움이 십자가 능력으로 정복되고 부활의 영광과 소망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성도님들 중에 깊은 고난의 터널 속에 갇혀 오늘을 힘겨워하는 분이 있다면 부활의 영광을 소망하시기를 바랍니다. 부활의 영광은 십자가 고난 뒤에 온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