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는 사람들에게 삶의 제약과 고통의 시간을 안겨주었습니다. 그 결과 감사를 삶에 적용하며 살기가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직장을 잃기도 하고 사업에 어려움을 당하며 각종 스트레스로 힘겨워하는 사람들에겐, ‘감사’는 너무 멀리 있는 단어처럼 보입니다. 교회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껏 모여 예배드리지 못했고, 계획된 행사들도 줄줄이 진행되지 못했기에 별로 감사할 일이 없어 보입니다. 태풍의 피해를 입었고 목장 모임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감사할 일보다는 불평할 일이 더 많아 보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성도는 황량한 광야에서도 감사를 발굴해내는 사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얼마 전 TV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번개로 초원에 큰 화재가 일어난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 넓은 초원이 단 몇 시간만에 새까맣게 타버렸습니다. 그러나 땅은 그 비참함 속에서도 감사를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타버린 재가 땅을 비옥하게 했고 불필요한 덤불이 제거되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목초지로 옷을 갈아 입었습니다. 그 모습에 우리의 신앙생활도 떠올려 봅니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라는 큰 재난을 맞이했습니다. 모든 것이 피폐해진 상황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감사의 씨앗을 간직하고 있다면 다시 푸른 초원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의 반대말은 흔히 불평이나 원망 정도로 생각되지만 오히려 ‘당연함’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당연함’이라는 단어 속에 감사를 잊고 살기 때문입니다. ‘평범함’이라는 단어 속에 감사를 잊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당연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 담겨 있는 ‘감사’가 삶을 의미있고 아름답게 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힘들지만 그 속에 하나님이 심어주신 ‘감사의 씨앗’, ‘은혜의 단비’는 여전히 우리의 신앙생활을 견디고 버티게 합니다.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절입니다. 감사절의 근거로는 먼저 성경적으로 ‘초막절/수장절’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생활을 기념하며 나뭇가지로 엮은 초막에서 지내기에 ‘초막절/장막절’로 부릅니다. 게다가 늦은 곡식을 거두어 저장한다는 의미로 ‘수장절’로도 부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에 대한 감사축제의 날입니다. 또한 ‘추수감사절’의 실제적인 의미는 신앙의 자유를 찾아 고국을 떠난 영국의 청교도들이 미국 땅에 도착한 후, 인디언들로부터 농사법을 배워 추수한 후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린 것에서 유래합니다. 겨울을 나면서 102명 중에 44명이나 죽었지만 그 아픔과 눈물 속에서 올려드렸던 감사축제였습니다.
코로나 시대, 모든 것이 힘들고 어려워도 감사는 환경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바라기는 대연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은, 당연하게 느껴지는 ‘평범함’이 감사로 고백되는 ‘특별함’이 되길 소원합니다. 우리는 힘든 상황이기에 여전히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낭떠러지와 같은 환경이기에 더욱 정신을 차리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것이죠! 이 모든 것이 ‘감사’로 고백되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