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성수 집사를 기억하며
추석 명절 연휴 마지막 날 아침 7시경, 한서병원 원목으로 계신 박성진 목사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비보를 접하는 순간 제 온몸에 힘이 빠졌습니다. 그날 박성수 집사가 새벽기도 나오는 길에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이미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전날에도 길에서 마주쳐 인사했었고, 명절 때 부친이신 원로목사님 댁을 방문하고 왔다는 말씀까지 들었는데 어찌 이렇게 황망한 일이 발생했는지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한서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박성수 집사의 시신은 이미 응급실을 떠나 장례식장 안치실로 옮겨졌습니다.
깊은 슬픔에 잠겨 있는 원로목사님 부부와 가족들을 보면서 뭐라고 위로해 줄 수가 없었습니다. 울부짖는 가족들의 슬픔을 달래 줄 어떤 위로의 말도 떠오르질 않았습니다. 그저 원로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최 진 집사님의 손을 잡아주는 것 외엔 그 어떠한 위로도 사치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다시금 아들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하신 사모님을 안치실로 모시고 가서 이미 숨을 거둔 박성수 집사의 시신을 보았습니다. 마치 우리의 황망한 마음을 위로하듯 그 표정은 평안해 보였습니다. 오열하는 사모님과 유족들을 위로하며 차가워진 시신에 손을 얹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장례 절차가 준비되었습니다.
저는 박성수 집사가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나 주님 곁으로 가면서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나이에 상관없이 떠남을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땅을 떠나는 일정과 시기는 우리의 관할 아래 있지 않기에 언제라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생각하며 오늘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이라는 시간도 내 것이 아님을 인정하며 주님의 영광을 위해 날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저와 연배가 비슷한 박성수 집사의 죽음은 저의 죽음으로 연결되어 묵상 되었습니다. 그간 연세가 많으신 분들의 죽음은 ‘그분의 죽으심과 위로’에 초점을 맞췄다면 박성수 집사의 죽음은 믿음의 동역자요 친구요 격려자의 죽음으로 ‘나의 죽음’까지도 연상되고 묵상 되었습니다. 저 역시 하나님이 부르시면 언제라도 가야 할 인생임을 깊이 체감하며 남겨진 우리가 먼저 간 고인의 몫까지 더 충성하며 잘 감당해야 함을 결단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故 박성수 집사의 살아온 날들을 우리는 세세히 알 수는 없다 해도 그분의 선한 열정과 순수함은 목사인 제 마음에 길이 기억될 것입니다. 세련된 말보단 투박한 말투였지만 그분의 말씀에서, 교회를 뜨겁게 사랑하고 복음을 위해 순수하게 힘썼던 고인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힘든 일이라도 맡겨만 달라고 했고, 새가족 학생들이 교회에 오면 누구보다 기뻐하며 자랑했고, 차량 봉사하면서도 불평하지 않았던 고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설교 때 가장 크게 ‘아멘’으로 반응했던 고인의 빈 자리가 무척이나 크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제대로 된 이별 인사도 없이 우리 곁을 떠나간 고인이지만 이것이 영원한 이별이 아님을 알기에 다시 만날 천국의 소망으로 위로받길 원합니다. 유족은 물론 저를 포함한 모든 성도님에게도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죽음의 대기자’로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믿음의 선한 싸움으로 달려갈 길을 마치면서 우리의 전 삶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